EU의 지속가능 제품 에코디자인 규정(ESPR)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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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파이크(David Pike), 마우저 일렉트로닉스
2026년 4월 17일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전자 산업계에서 수리 및 보수는 소유 개념에서 단지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초기 소비가전 기기들은 시간이 지나면 유지·보수될 것을 전제로 설계됐다. 서비스 매뉴얼은 널리 제공됐고, 예비 부품도 주문할 수 있었으며, 수리 기사들은 소비자가 한 번 구매하면 수십 년 간 사용하게 될 전자기기들을 일상적으로 수리했다. 어딘가 고장이 나면 문제를 일으킨 부품을 찾아 교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응이었다.
소비자들이 전자기기를 수리해서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전자기기는 비쌌고, 교체보다 수리가 일반적으로 더 경제적이었다. 과거에는 기기를 더 오랫동안 사용했고, 폐기되는 제품 수도 적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지속가능한 제품 설계 방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자 산업은 변화해 왔다. 반도체 집적 기술의 발전, 대량생산 체계,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 덕분에 전자 제품은 크기가 더 작아지고, 성능은 높아졌으며, 가격도 훨씬 저렴해졌다. 많은 경우, 기기를 수리하는 것보다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편이 더 쉬워졌다.
지속가능성의 개념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전자기기가 더욱 보편화하고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면서 관심은 에너지 효율로 옮겨갔다. 엔지니어들은 전력 소비를 줄이고, 배터리 수명을 늘리며, 전원공급장치와 전자 시스템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측정 가능한 실질적 이점을 제공해 왔다.
관심사는 에너지 효율만이 아니다. 제품의 환경적 영향은 전원을 켜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원자재는 구매한 다음 글로벌 제조 및 공급망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 기기의 일부가 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제품은 수명 종료 시점에 도달하며, 그 때 부품을 회수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전자폐기물이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러한 관점은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 ESPR)에 반영돼 있다.[1] ESPR은 유럽연합(EU)의 규정이지만, 그 영향력은 전 세계로 확장된다. 오늘날 전자제품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설계·제조되며, 전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은 다양한 규제들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ESPR이 장려하는 설계 원칙은 전 세계 엔지니어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 가운데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엔지니어들은 오래 전부터 신뢰성과 제품 수명을 고려해 시스템을 설계해 왔으며, 제품에 사용할 소재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왔다. 예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은 이러한 원칙들에 부여되는 중요성과, 그것들이 환경적 책임과 결합되는 방식이다.
지속가능한 설계에 대한 더 넓은 관점
ESPR은 지속가능성을 단 하나의 지표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에너지 소비가 친환경 성능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은 일직선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설계가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에 의존할 수도 있으며, 극도의 내구성을 목표로 하는 제품이 제조 과정에서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엔지니어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러한 요소들을 각각 분리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ESPR은 제품의 환경 영향에 관여하는 여러 설계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보다 넓은 관점을 뒷받침한다. 제품 수명이 길어질수록 교체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내구성이 중요하며, 수리 가능성은 개별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시스템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책임 있는 소재 선택은 제조 과정이나 폐기 단계에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물질의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ESPR은 이처럼 익숙한 설계 관련 의사결정 요소들을 제품의 전체 생애주기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워크 안에 배치하고 있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설계
제품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환경 영향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전자 기기를 제조하려면 상당한 에너지와 원자재가 필요하다. 기기를 자주 교체하면 동일한 자원을 대체 하드웨어 생산에 재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설계하면 새로운 기기를 제조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제품 수명은 설계 엔지니어가 선택하는 부품부터 열 관리 방식, 그리고 기계적 구조가 시간이 지나도 얼마나 잘 유지되는지 등 일상적인 설계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신뢰성 시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속 수명 시험과 환경 적합성 평가는 제품이 현장에 배치되기 전에 잠재적인 고장 메커니즘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부품이 스트레스 조건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함으로써, 설계자는 장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
커넥터와 기타 전자기계 부품은 반복적인 기계적 동작 사이클을 겪고, 가혹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맥락에서 특히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적절한 사용 주기에 맞춰 설계된 부품을 선택하면 제품 전체 수명을 크게 연장할 수 있다. 수명이 긴 제품을 설계하는 것은 여전히 엔지니어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지속가능성 전략 가운데 하나다.
유지보수를 고려한 설계
수리 가능성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산업용 시스템, 통신 인프라, 운송 장비를 포함한 많은 종류의 기기들이 운용 수명 전반에 걸쳐 정비와 수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반면 소비가전 기기는 때때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최신 전자제품을 더 작고 강력하게 만드는 집적 기술은 수리를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접착제로 조립되거나, 밀폐형 인클로저를 사용하거나, 고도로 통합된 모듈 구조로 설계된 제품은 유지보수가 매우 까다롭다(그림 1).

그림 1: 부품에 접근하기 쉽게 시스템을 설계하면 제품의 운용 수명 전반에 걸쳐 유지보수와 수리가 가능해진다. (출처: st.kolensikov/stock.adobe.com)
유지보수를 고려한 설계가 항상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이는 수리하기가 너무 어렵지 않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모듈형 구조를 적용하면 개별 어셈블리를 독립적으로 교체할 수 있다. 특수한 공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분리가 가능한 체결 방식은 내부 부품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배터리나 커넥터처럼 예측 가능한 마모가 발생하는 부품은 손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다.
명확한 서비스 문서와 예비 부품을 공급하는 것 역시 수리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이러한 방식은 개별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제품을 계속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리 가능한 설계는 유지보수가 충분히 가능한 제품을 일회용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수명 종료 단계까지 고려한 설계
궁극적으로, 모든 제품은 유효 수명이 끝나는 시점에 도달하며, 전 세계 전자폐기물(e-waste)은 계속 증가해 2030년에는 8,2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2] 이에 따라 가치 있는 자원을 회수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전자 어셈블리(그림 2)에는 구리와 알루미늄 같은 유용한 자원이 포함돼 있으며, 이러한 자원을 회수하면 추가적인 채굴과 정련 필요성을 줄일 수 있다.

그림 2: 전자폐기물에는 구리와 같은 가치 있는 금속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재활용을 고려해 제품을 설계한다면 이러한 자원을 회수해 재사용할 수 있다. (출처: S.Leitenberger/adobe.stock.com)
효과적인 재활용은 제품이 애초에 어떻게 설계됐는지에 달려 있다. 서로 다른 많은 소재를 결합하거나 복잡한 접합 기술에 의존하는 어셈블리는 재활용 공정별로 분리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부품을 쉽게 분해할 수 없다면 유용한 자원은 혼합 폐기물 속에 그대로 남게 된다. 제품 설계가 더 적은 소재 조합을 사용하고 재활용을 방해하는 코팅을 피할수록 자원 회수 효율은 높아진다. 또한 수명 종료 시점에 부품들을 분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어셈블리는 소재를 유용한 재활용 공정으로 분리하는 데도 유리하다.
회수와 재사용은 순환경제의 핵심 요소다. 순환경제는 자원을 한 번 사용 후 폐기하는 대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생산적으로 활용하도록 장려한다.
우려 물질과 소재 관리
지속가능성은 전자제품 내부에 사용되는 물질에 대한 관심도 요구한다. 유해물질 사용 제한 지침(RoHS)과 화학물질 등록·평가·허가·제한(REACH) 규정은 이미 인체 건강이나 환경에 위험을 줄 수 있는 물질에 대한 제한 기준을 마련해 왔다.
ESPR은 전자제품 설계 전 과정에서 사용되는 소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일반적으로 공급회사가 제공하는 문서와 물질 선언서(material declaration)를 활용해 부품이 관련 규제 요건을 충족하는지 확인한다.
오늘날의 전자 시스템은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규정들을 준수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하나의 제품에도 수십 개의 공급사들로부터 조달한 부품이 포함될 수 있으며, 각 공급사들은 서로 다른 소재와 제조 공정을 사용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규정 준수 여부를 확보하려면 철저한 문서 관리와 제조사·공급사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다.
설계 초기 단계에서 소재 규정 준수 여부를 점검하면 개발 후반부에 커다란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는 재설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환경 요구사항을 성능 목표와 신뢰성 기준과 함께 동시에 고려할 때, 지속가능성은 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설계를 지원하는 도구들
지속가능성은 이 외에도 다양한 고려 사항을 요구하지만, 엔지니어들은 설계 결정이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보다 다양한 도구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 소프트웨어는 원자재 채굴, 제조, 운송, 사용, 폐기 등 제품 생애주기의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추정한다.[3] 이러한 모델은 설계팀이 여러 대안을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LCA 모델은 더 무겁지만 수명이 긴 인클로저가, 무게는 가볍지만 자주 교체해야 대체품보다 얼마나 더 친환경적인지를 판단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제는 많은 LCA 도구들이 제품수명주기관리(PLM) 및 컴퓨터지원설계(CAD) 환경에 통합되고 있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들은 설계가 진행되는 동안 소재 선택과 제조 방식의 영향을 평가할 수 있다. 다른 합금을 선택하거나 재활용 가능한 폴리머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비용과 성능뿐 아니라 제품 생애주기 전반의 영향까지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과 디지털 트윈 기술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 해석 및 신뢰성 시뮬레이션은 제품의 예상 수명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낮은 온도로 동작하거나 기계적 스트레스를 피하도록 설계된 제품은 수명이 크게 늘어날 수 있으며, 이는 교체용 하드웨어 수요를 줄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원칙을 개발 초기 단계부터 고려하면, 엔지니어들은 일반적인 설계 트레이드오프 과정 속에 지속가능성을 자연스럽게 반영할 수 있다.
맺음말
ESPR은 제품 설계 전반에서 지속가능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하고 있다. 단순히 사용 중 에너지 소비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제품에 사용되는 소재, 기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제품이 수명 종료 단계에 도달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엔지니어들에게 이러한 고려 사항들은 이미 익숙하다. 신뢰성, 유지보수성, 그리고 책임 있는 소재 선택은 오래 전부터 전자 시스템 설계에 영향을 미쳐 온 핵심 요소들이다. ESPR은 이러한 의사결정들을 환경 영향과 직접 연결하는 규제 프레임워크 안에 배치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설계는 종종 우수한 엔지니어링 관행과 맞닿아 있다. 제품 수명이 보다 길고, 수리가 가능하며, 사용 종료 후 소재를 회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은 폐기물과 자원 소비를 줄인다. ESPR은 이러한 결정들이 엔지니어의 일상적인 업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참고문헌
[1]
[2]https://ewastemonitor.info/electronic-waste-rising-five-times-faster-than-documeted-e-waste-recycling-un/
[3]https://www.iso.org/standard/37456.html
저자 소개
데이비드 파이크(David Pike)는 커넥터 및 인터커넥트 업계 전반에서 그의 열정과 남다른 기술 애호가적 성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온라인에서 ‘커넥터 긱(Connector Geek)’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